갓생 옆에서 그냥 삽니다, '걍생'


요즘 사람들의 주말 계획을 훔쳐보면 비슷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토요일 아침 러닝, 오후엔 얼마 전 결제한 원데이 클래스, 저녁엔 미뤄둔 집 정리. 평일에 다 못 한 일을 주말에 몰아 넣고, 일요일 밤에는 다음 주 계획을 하나 더 얹습니다.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삶이죠. 그런데 최근 이 흐름 옆에 정반대의 단어가 조용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걍생'입니다.


기준선은 계속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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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이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갓생의 기준선이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위로 올라갔다는 점이에요.

올해 3월 국민대신문이 재학생 25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34.7%는 학업과 아르바이트, 교내외 활동을 '모두' 병행해야 비로소 갓생이라고 답했습니다. 하나를 잘 해내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전부 동시에 굴려야 인정받는 삶이 된 겁니다.

기준선이 올라가면 사람은 두 가지 중 하나를 합니다. 따라 올라가거나, 내려오거나.



열정이 시야를 좁힐 때

먼저 따라 올라간 쪽에서 벌어지는 일을 볼까요. 흥미롭게도 갓생이 문제가 되는 순간은 대개 사람이 지쳐 쓰러질 때가 아니라, 아직 에너지가 넘칠 때입니다.

건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교실 하지현 교수는 tvN 〈어쩌다 어른〉에서 성취를 향한 과도한 열정이 오히려 조바심을 부추겨 시야를 좁게 만드는 '시야 협착'을 일으킨다고 짚었습니다. 앞의 목표 하나만 크게 보이고, 그 옆에 있는 조건들은 시야에서 사라지는 상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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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좁아진 사람의 선택은 대체로 이런 모양입니다. 

아직 다 못 읽은 책이 쌓여 있는데 새 책을 덜컥 주문합니다. 어차피 읽을 거면 지금 사두는 게 낫다고 생각하니까요. 소요 시간을 따져보기 전에 모임 날짜부터 잡고, 여행 계획을 짜다가 하루에 갈 수 없는 코스를 하루에 밀어 넣기도 하죠. 게을러서 생긴 실수가 아니라, 의욕이 판단보다 반 박자 앞서 나가서 생긴 실수예요. 나중에 "아, 나 그때 왜 그랬지" 하고 돌아보게 되는 결정들의 상당수가 여기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등장한 '걍생'

이제 내려온 쪽입니다. 이 흐름의 반작용으로 나온 말이 걍생이에요. '그냥 산다'의 준말이지만, 아무렇게나 산다는 뜻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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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보도에 소개된 30대 직장인 이진주씨는 스스로 갓생러였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직접 만든 도시락을 챙기고, 이동 시간에는 뉴스와 뉴스레터로 정보를 채우고, 회사에서는 분 단위로 움직였죠. 그런 그가 지금은 걍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가 내린 걍생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직장에서는 능력을 인정받고, 사회에는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평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 '걍' 사는 것. 남과 비교하지 않고 속도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핵심이라고 해요.

목표를 버린 게 아니라, 목표를 향해 달리는 속도를 자기 것으로 되돌린 겁니다.



걍생을 사는 사람들의 세 가지 공통점

요즘 걍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을 모아보면, 태도가 세 갈래로 겹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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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기준을 바깥이 아니라 안에 둡니다

갓생의 기준선은 대체로 남이 만듭니다. 누군가의 새벽 기상 인증, 누군가의 완독 기록, 누군가의 한 달 운동 결산. 그 기준을 그대로 가져오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늘 조금씩 모자란 상태가 됩니다. 기준을 만드는 사람이 매번 다르니까요. 걍생을 사는 사람들은 이 기준선을 자기 안으로 옮깁니다. 옆 사람이 새벽 5시에 일어나든 말든 그건 그 사람의 리듬이고, 내가 어제보다 조금 나아졌는지가 오늘의 판단 근거가 됩니다. 비교 자체를 그만두는 게 아니라, 비교 대상을 어제의 나로 바꾸는 것에 가까워요.


둘. 마음이 가장 뜨거울 때 결정하지 않습니다

걍생을 사는 사람들의 눈에 띄는 습관 하나는, 즉답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온 자리에서 바로 신청 버튼을 누르는 대신 하루를 재워둡니다. 장바구니에 담아만 두고 다음 날 다시 열어보기도 하죠. 하루가 지나도 여전히 하고 싶으면 그건 진짜 하고 싶은 일이고, 마음이 식으면 그건 열기였던 셈이에요. 포기가 아니라 시차를 두는 습관입니다.


셋. 일정표의 빈칸을 그대로 둡니다

갓생의 일정표에서 빈칸은 채워야 할 실패의 흔적입니다. 걍생의 일정표에서 빈칸은 처음부터 계획의 일부예요. 사람의 하루에는 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끼어듭니다. 나갈 채비가 늦어지고, 갑자기 연락이 오고, 몸이 무거운 날이 있죠. 빈칸이 있는 사람은 그 일들을 그냥 흡수하지만, 빈칸이 없는 사람은 하나가 밀리는 순간 그날 전체가 무너집니다. 여유분을 남겨두는 건 덜 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끝까지 굴러가게 만들기 위한 설계에 가깝습니다.

갓생과 걍생은 반대말처럼 보이지만, 사실 겨루는 건 방향이 아니라 온도입니다.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은 양쪽 다 같아요. 다만 한쪽은 그 마음을 끝까지 올려붙이고, 다른 한쪽은 오래 갈 수 있는 온도에 맞춰둘 뿐입니다.




행복을 고르는 시간, Hap-pick 🌤️

지금 세운 계획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아니면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조바심인지 한 번쯤 구분해볼 만합니다. 

오늘 하루쯤은 목록에 하나를 더하는 대신, 하나를 미뤄두는 쪽을 골라보는 건 어떨까요.



참고 자료
국민대신문, 「갓생 압박에 지쳐가는 청년들, 건강한 휴식이 필요한 때」, 2026.04.06 (재학생 259명 설문, 2026.3.10~3.16 / 하지현 교수 tvN 〈어쩌다 어른〉 발언 인용)
경향신문, 「혹시 당신도 '갓생'의 함정에 빠지진 않았나요?」, 20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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